2019년 7월 2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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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하고 바쁘게만 돌아가는 서울 도심 속, 그것도 부동산 전문용어로 ‘노른자 땅’이라고 불리는 신촌, 종로, 대학로, 명동, 고대 등지에는 ‘민들레영토’라는 왕국이 있다.
사람들은 이 영토에 편입되고자 추운 겨울에도 1시간이 넘도록 줄을 서서 기다린다. 그곳에는 불로장생할 수 있는 차(茶)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부킹의 스텝도 없으며, 게다가 외국물 커피집도 더더욱 아니다. ‘민들레영토’는 순수 한국 토종의 ‘Made in 지승룡’의 작품이자 신념, 희망이며 독특한 아이템이다. 주위에서는 ‘한국판 스타벅스’의 탄생이라며 법석아닌 난리를 피우기도 한다. 해외외식업체의 공세, IMF와 오랜 내수침체에도 불구하고 국내 카페 브랜드 인지도 1위, 국내 외식업소 고객만족도 1위를 거머쥔 민들레영토, 과연 그 탄생과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아담한 키에 나이에 비해(?) 고운 피부, 나름대로 멋을 낼 줄 아는 센스를 가지고 있는 지승룡 소장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공간을 채우는 사랑’에서 만났다.

성직자, 길을 잃다
그는 목사였다. 그의 이력을 보면 연세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회 활동을 했었다. 그러나 서른 여섯에 이혼을 하면서 예수의 사랑과 진리를 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다는 결심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멀쩡한 성직자도 교회가 모자라서 목회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이혼이라니! 이혼경력은 목회자에게 치명적인 핸디캡이 되어버렸다.
그 후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방황이 시작되었다. 돈도 없고 할 일도 없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책이었다.

3년 동안 2,000권의 책 읽다
매일 정독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책을 봤다. 처음에는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프고 불안해서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손에 잡은 것이 신문, 그리고 여성지, 동화책 순이었고, 어느새 사회복귀에 필요한 경제와 경영분야의 책, 사기를 당하지 않고 사업을 하는 책 등을 섭렵했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읽은 책을 세어보니 2,000권이었다. 그는 그렇게 패배의식을 달랬다.

카페에서 쫓겨나다
93년 가을 인사동의 조그만 카페에 앉아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며 30분 정도 사색에 잠겨있는데 주인이 “손님, 오늘은 토요일인데 이렇게 혼자 오래 앉아 있으면 영업에 지장이 많으니 그만 나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러나 그때 떠오른 생각!
‘외로운 도시인들이 고향의 집이나 어머니의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휴식공간을 만든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옛날 시골다방에서 마담이 손님에게 편안한 대화 분위기를 제공했듯, 도시인이 쫓겨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카페를 만들면 어떨까?’

가래떡 팔아서 카페를 차리다
그랬다. 그는 처음 가래떡장수였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상품’이라는 발상을 떠올려 부자동네 압구정동에서 좌판을 벌렸다.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에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30대 후반의 남자가 나타나자 관심이 집중되었다. “어머니! 이거 쌀로 만든 떡인데 제가 지금 막 뽑아왔습니다.”
예상은 적중했다. 장사가 잘되는 날은 하루 20만원 넘게 수익을 올렸다. 가래떡 장사를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카페를 차릴만한 초기 자본 2천만원을 모았다.

그는 모교가 있는 신촌을 사업 장소로 염두에 두었다.
“하루 종일 신촌 부근 서서 살피다가 카페를 하기에 딱 맞은 장소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은 연세대 쪽 골목 안 기찻길 옆에 있는 양장점이었는데, 위치가 골목 안쪽이고 뒤편은 기찻길이어서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권리금만 1억원을 요구했습니다. 몇 주일간의 줄다리기 끝에 임대보증금과 권리금을 합해서 7천만원으로 깎았죠. 하지만 2천만원 밖에 없어서, 나머지는 월세로 돌릴 작정으로 건축대장을 떼어보았는데, 건축물관리대장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무허가 건물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이곳은 무허가건물이더군요. 구청 담당공무원들이 그러는데 머지않아 철거하고 이 거리를 아름답게 꾸밀 계획이라고 하더군요"라며 재협상에 들어갔습니다. "없던 얘기로 하자"는 주인은 며칠 후 보증금 1천5백만원, 월세 70만원의 조건으로 계약하자는 제안을 받아 들었습니다.”


10평짜리 카페 문을 열다
드디어 카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 9개월 만에 10평짜리 가게를 열었다. 카페에서 무엇을 팔 것인가. 음식과 음료 나아가 종업원의 서비스를 판다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팔기로 했다. 손님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카페에 온 손님을 쫓아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결정한 게 리필이었다. 어머니는 자식이 아무리 많이 먹어도 낯을 찡그리지 않는다. '드시고 더 드세요'의 마음가짐으로 손님을 대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마더(Mother)마케팅’이다.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팔아 ‘감동’을 준다는 의미이다.

“처음 무허가건물이어서 음식을 팔지는 못했지만 장소사용료로 '문화비'를 받되 카페 안으로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손님은 막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판기에서 파는 음료값에 장소사용료를 포함시키고 고급종이컵을 사용해 싸구려라는 느낌을 없앴죠. 간판도 달 수 없어서 영어로 'Break the Impossibility Habits'라고 크게 써놓고, 차를 파는 곳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커피자판기를 하나 사서 쇼윈도 앞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흔들의자 두 개에 부부가 앉았는데, 그때 아내는 공주 옷을 입고 저는 스웨터를 입고 앉아 커다란 활자로 인쇄된 영어 성경책을 읽었습니다. 실내에는 항상 새소리, 물소리 같은 환경음악을 틀어 놓았구요.”
이렇게 시작된 카페는 첫날 2명의 손님이 찾아온 뒤 한 달도 안돼 하루 1백 명씩 손님이 찾아왔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이곳은 하루 1만 명이 찾아온 게 된 것이다.

그가 노점상 시절 보여준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운영에서도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차 값을 따로 받지 않고 문화비를 내면 민토차를 기본으로 컵라면, 커피, 레모네이드, 녹차 등 다양한 종류의 음료를 3번까지 리필해서 마실 수 있게 하거나, 조용히 책을 볼 수 있는 독서실과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세미나실, 연극과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 고객들이 직접 참여해서 자신들만의 콘서트를 열거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은 10년 전 노점상을 하면서 그가 보여준 노하우를 고스란히 적용하는 셈이다.

고객이 살려낸 '문화공간 민토'
사업 확장 후 위기가 찾아왔다. 서울시가 '아름다운 서울'을 만든다는 취지에 따라 서대문구청은 기찻길 옆 건물들을 헐고 공영주차장과 공공시설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루 아침에 카페가 없어질 위기의 순간에 그는 카페에서 토크쇼를 열고 '이곳이 헐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단골 학생들은 즉각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구청 홈페이지에 하루 수백 건의 글을 올려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민들레영토 지키기 운동에 나섰다. 연세대는 물론 이화여대, 서강대 학생들까지 온갖 유흥시설로 덮인 신촌에서 민들레영토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공간이라면서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사태가 이쯤 되자 구청에서 실태조사를 나와 마침내 서울시로부터 계획을 철회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민들레영토가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도시인들의 문화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도시문화연구소'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주인이나 대표, 사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소장'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위기를 성공으로 바꾸어버리는 그는 경영의 천재일까?
“중학교 때 측정한 아이큐가 86에 불과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고객과 직원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직원에게 서비스하라
그는 감성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전국의 직영점을 다니면서 직원들을 격려하는 한편, 메신저를 활용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들의 제안을 경청한다. 젊은이들의 취향을 이해하기 위해 직원들과 어울려 대형 의류 상가에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동대문 시장에서 종종 직원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갖습니다. 직원들에게 돈을 줘 원하는 옷을 사게 한 뒤, 이들이 구입한 옷을 보며 색상, 디자인 등 젊은이들의 취향을 파악해 민토 내부의 인테리어나 조명을 개선하는 자료로 활용합니다.”

사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종업원들이 함께 움직여줘야 한다. 그래서 민들레영토의 도우미들부터 감동시켜야 한다는 게 지승룡의 원칙이다. 동종 업종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어려우면 상대적으로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상대적으로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는 것은 매출액 대비, 이익 대비로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는 뜻이다.
급료가 높으면 우수한 도우미를 채용할 수 있고 다른 곳으로 쉽게 옮겨가지 않고 오랫동안 일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카페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머니의 사랑'을 손님들에게 실천할 사람들이 직원들이지만 주인 마음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민들레영토가 도우미 자신들의 것이라고 느끼게 하기 위해 '마스터 제도'를 도입했다.

마스터 작위는 1년 이상 근무자 중에서 민들레영토의 경영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성실하게 근무하며 경영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선발해서 작위식을 거행하고 일정액 이상의 매출을 올렸을 때 인센티브도 주어진다.

그는 요즘도 민들레영토의 홈페이지를 통해 커뮤니티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아예 고객들의 미니 홈피를 찾아서 매일 밤 마실을 떠난다. 고객들의 생각과 감성을 이해하는 통로이기도 하면서 인터넷 시대에 걸맞은 고객관리 일환이기 때문이다.

민토의 꿈
목사에서 노점상으로 그리고 이제는 스타벅스와 겨루는 대형 외식업체 사장이 된 그가 그리는 비전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민들레영토가 경건하고 도덕적인 자본을 형성해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본질이 되어버린 투쟁과 대립과 반목으로 누군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닌, 내가 노동하고 내가 창조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행복하고 삶에서 승리를 얻는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민들레영토가 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2008년에는 전문 경영자에게 경영을 맡기고 일선에서 물어나려고 합니다. 그리고 향후 대학을 설립해 민토에서 익힌 서비스 정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습니다.”

한치도 게으르지 않고, 허망한 소망이 아닌듯하다. 스트레스는 매일 아침마다 하는 경건의 시간(QT)으로 날려버리고, 간간히 장소 불문하고 행해지는 춤(?)을 통해 기쁨을 발산한다는 지승룡 소장. 그를 통해 또 한번의 희망과 새로운 감격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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