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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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산은 패기와 신용 - 피자헛과의 만남
그의 시작은 이렇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호남정유를 거쳐 종합무역상사 삼화에 취직해 고속 승진하며 승승장구하던 성신제는 회사의 몰락으로 퇴사를 하고 만다. 퇴직금으로 받은 7만2천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자금난으로 허덕이던 중 동업자들을 만나 운동용품 제조회사를 설립하지만 동업자들의 배신으로 손을 떼게 되었고, 회사는 3개월 만에 부도가 나고 만다. 그 바람에 자금회수를 위해 받았던 어음은 하루 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었고, 집안은 온통 빨간 딱지가 붙게 되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모든 재산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절망하다 어느 순간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일어나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게 미국행이었는데 문제는 미국에 갈 돈이 없었죠. 그런데 한 친구가 입양아를 데리고 가면 공짜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전 인생의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입양아를 비행기 안에서 돌보며 미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세일즈를 펼친 덕에 피자헛 판촉제품에 대한 주문을 받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피자헛 매장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매장들에 주방용품을 수출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포크 하나, 나이프 하나 만드는 데에도 정열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며칠 밤낮을 고군분투해 만들어낸 샘플을 들고 미국 피자헛 본사로 향했다. 가장 좋은 제품이라는 자신감과 계약이 잘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고. 어떻게 설득을 할까, 무슨 음식을 접대할까, 그의 머릿속은 온통 사업구상으로 가득 차있었지만 정작 그를 맞이한 건 냉대와 멸시였다. 매니저도 아닌 말단 담당직원이 그를 맞이했고, 그의 모든 노력이 담긴 포크와 나이프를 한번 훑어보는 것으로 상담은 단 몇 분 만에 끝났다. 수출 계약은 성사되었지만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 사건은 그에게 오기를 갖게 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직원 4명을 둔 오퍼상 외에는 가진 게 없었지만 그는 무작정 펩시코 본사를 찾아갔다.

“무엇보다 나는 젊습니다.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에서 뛸 수 있습니다. 가맹점 오너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노력이 ‘맥도널드’의 성공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까? 만일 한국의 대기업들이 피자헛의 가맹점을 허가 받으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만약 피자헛으로부터 가맹점 영업권을 따내지 못하면 나는 혼자서라도 피자 사업을 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영업권을 주십시오.” 펩시코 인터내셔널 회장 앞에서 그가 한 말이다. 회장은 그의 말을 듣더니 “좋습니다. 당신의 패기를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피자헛의 한국 내 영업권을 따낼 수 있었다.

무너진 성공 신화
피자헛은 1985년 이태원에 첫 매장을 열었다. 86년 아시안게임으로 눈길을 끌면서 브랜드가 알려지고, 열악한 국내 피자에 비해 ‘먹을 만한 피자’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자리를 잡아갔고, 1993년엔 52개 피자헛 가맹점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련은 이제부터다.

피자헛이 한국에서 호황을 이루자 미국 본사와 분쟁이 일기 시작했다. 그에겐 더 이상 그를 방어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를 아들처럼 귀여워해 주던 경영진들이 은퇴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해 성신제는 52개 피자헛 가맹점을 전부 팔고 고심 끝에 ‘케니로저스 로터스 치킨’을 운영한다. 하지만 그렇게 문을 열어 잘되는가 싶던 치킨 사업은 1997년 IMF 사태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도산하고 만다. 게다가 로터스 가든 역시 5천만원짜리 어음을 막을 수가 없어 최종부도처리가 되고 말았다.

채권자들은 광분한 폭도를 같이 변해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부동산에 가압류를 시작했고, 경매에 붙여져 시가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처분되었다. 세 번의 연이은 사업 실패와 매일 사무실에 들이닥쳐 욕설을 퍼붓고 발길질을 해대는 채권자들을 상대하며 괴로워하던 그는 자살을 결심할 만큼 극단의 절망을 겪었다고 한다.


“채권자들에게 날마다 시달리다 보니 머릿속에는 죽음 이라는 단어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어느 날은 죽을 작정으로 신축 건물 공사장 꼭대기에 올라갔던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죽음을 눈앞에 두자 죽을 각오로 다시 일어서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혼란스러웠던 마음들이 차츰 정리되었고, 새로운 의지도 생겨났습니다.”

그렇다고 당장에 변화는 없었다. 채권자들은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전 이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배웠습니다. 몰랐던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활기를 되찾았고, 무엇보다 저는 지하철을 통해 삶의 결정적인 힘을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번거롭고 노선도 몰라 헤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만원 지하철을 타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감동했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전율을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나 역시도 그들과 함께 한 무리가 되어 어떻게든 지하철을 타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죠. 지하철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시켜준 셈입니다.”

“도우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도우를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날 출근해서 보면 탱탱하고 힘있게 부풀어 있어야 할 도우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예요. 실패죠. 이러기를 한 달 동안. 그런데 어느 날은 갑자기 전기가 나간 거예요. 전기요금이 밀려 한전에서 전기를 끊어버렸던 것입니다. 현실이 정말 암담하더라구요. 아내가 겨우 마련해준 돈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는데 이번에 밀가루가 떨어진 거예요. 정말이지 돈을 구할 수가 없더라구요. 근데 갑자기 전화기가 눈에 보이는 겁니다. 전화를 해지하면 보증금을 받을 수 있으니 그 돈으로 밀가루를 살 수 있었던 거죠. 이것저것 제하고 나니 17만원이 남았습니다.” 이런 일을 겪은 지 3개월 만에 그토록 바랬던 도우가 숨을 쉬었다고 한다.

물론 처음부터 성신제 피자가 잘 된 것은 아니었다. 고객들의 반응은 그저 덤덤할 뿐이었다. 미국식 피자와 달리 담백하고 고소한 빵을 살린 이탈리안식 피자에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그것이 매출로 연결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천리안, 유니텔, 나우누리와 같은 PC통신에서 식도락 게시판에 성신제 피자에 관한 글들이 우후죽순 올라오고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젊은이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날마다 그때의 각오를 되새기며 직접 밀가루 반죽하고, 빵 위에 토핑을 합니다. 녹차 피자, 김치 피자와 같은 메뉴도 직접 만들고 연구하는 자세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고객을 맞이할 때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

베풂의 철학과 소중한 가족
“나는 한때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그렇다고 베푸는데 인색하지는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베풂의 철학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내 호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옜다, 너도 가져라’는 식이었죠. 그런 제가 지금은 무일푼이 되었지만 마음 만은 넉넉합니다. 누가 벤츠를 타고 다녀도 부럽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거기서 보람을 찾는 삶에 만족할 뿐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내게 재운이 따라 큰돈을 벌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제대로 한번 쓰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베풂의 철학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는 그. 승승장구할 때는 자기가 잘나서인 줄 알았다. 자기가 똑똑해서, 자기가 잘해서 이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힘든 일을 겪은 후 주위에서 신뢰해 주고 믿어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삼 돌아보게 된 것은 가족들의 사랑이다. 청룡열차를 타듯 오르내리는 삶 속에서도 묵묵히 동행하며 지켜봐 주던 아내, 몰래 지갑에 몇 천원 넣어 주던 아내. 그리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을 믿어주었던 아들과 딸. 가족들 덕택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그는 가족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본 기사는 <나는 50에 꿈을 토핑한다, 성신제 지음>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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